손과 손의 마주침 #3 - 더 깊은 숲속으로 -소설연재- 손과 손의 마주침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 그나마 풀들이 밟혀 누그러진 좁은 길 위로 한 소년이 뛰어간다. 소년의 품엔 무엇인지 모를 풀 두덩이가 들려있었다. 곧 하나의 허름한 판자촌에 다다른 소년은 그 중 한집을 향하고 있었다. 문앞에 다다러서야 뜀박질을 멈춘 소년은 숨을 가다듬고 집 안쪽의 누군가를 향해 외쳤다.

“누나, 부언초 구해왔어.”

소년은 바로 류현이었다.

집 안쪽에선 이마의 땀을 팔로 훔치며 얼굴을 돌리는 여인이 있었다. 흰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이 여인은 류현의 누나 서민이었다. 그녀는 류현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약간 야위고 수수한 모습이었지만, 결코 연약해 보이지는 않는 인상이었다. 미모를 가꾼다면 한창 아름다워 보일 그녀였지만, 현실은 그런 여건이 되어주지 못하는 듯 하다.

“으응, 수고했어 이쪽이야.”

여름의 폭염, 눅눅한 냄새가 나는 판잣집. 척 보기에도 열악해 보이는 환경에서 그들은 환자를 간호하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환자들은 척 보기에도 심한 병을 앓고 있어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류현과 서민 단 둘 뿐이었다. 이곳의 환자들이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은 ‘중해’. 약 20년 전 쯤부터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이 역병은 감염로와 치료법을 알 수가 없어 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병이었다.

증상 초기엔 피부가 멍들고 짓무르는 피부병의 증상뿐이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아니하고 허약해지며 여러 합병증이 나타나 죽게 된다. 이 병에 대해 연구한 여럿 의원(醫員)들은 과연 이것이 어떠한 병인지, 전염경로는 어떠한지 수년간 연구했지만 결국 아무도 확답을 낼 수 없었다.

단지 알아낸 것 이라곤 한 가지 치료법. 인체의 탁기를 없애주고 평생 병에 안 걸리게 해줄 정도의 영약. 대 문파에나 있을 법한 것을 일반 서민 환자들이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위협적인 증상에 나라에서 지원을 해줄 정도로 관심이 깊었지만, 곧 지역에 한정된 풍토병같은 습성과 발병자의 수가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소란은 잊혀져갔다. 결국 치료법도 개발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병으로 인식되어지면서 이 병의 환자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외각으로 쫓겨났다. 이곳은 그런 곳들 중 하나였다.

산길을 내리 달려온 류현은 헐떡이는 숨을 겨우겨우 고르며 말을 이었다.

"되는대로 집어왔는데 많치가 않아.."

"잘 구해왔어 이 정도면. 이제 좀 쉬어.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니?"

"이 정도가지고 뭘, 누나는 더 힘들꺼아냐."

"녀석 걱정은.. 고맙다. 하지만 어서 가서 쉬어라. 몸성한 사람이 우리 말고 없는데 우리마져 몸져 누우면 어쩌겠니."

"응."

류현이 가져온 약초를 건내받은 여인은 준비해둔 그릇에 약초를 넣고 잘게 빠았다. 그녀 옆에는 피부 곳곳이 습포로 부풀어오른 환자들이 있었다. 밤새 이슬비가 내리자 덥고 습한 환경탓에, 상태가 악화되어 류현에게 약초를 구해오라 한 것이었다. 류현이 힘들여 가져온 약초에 웃음지어 말해주긴 했지만, 그 적은양은 역시나 여인의 마음 한구석을 조여오고있엇다.

'이렇게 버티는게 고작인건가.'

고개를 들어 둘러 보는 그녀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상처가 심한 사람부터...해야할까...'

어짜피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기에 고통을 줄여주거나 상처가 더 심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한계였다.

병의 상태가 심한사람에게 처방하는 것이 이로울지 모르나... 그렇다고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사람이 악화되게 놔두는 것도 문제였다. 마음이 여린 여인은 눈앞에서 신음 짓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면 누구한테 먼저 약을 써야할지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크음...어이 서민. 난 됬으니 이 옆에 분들이나 먼저 해주게나"

그중 그나마 건장해 보이는 청년이 말해왔다. 하지만 그 역시 곳곳에 염증으로 뻘겋게, 검게 달아오른 상처들이 보이고있었다.

"예..? 하지만. 그 상처도 놔두면..."

"됐으니까 나 말고 다른사람이나 해줘. 이 정도 염증은 터지고 피나면 딱지져서 다 낫게 되있어. 나야 아직 젊은 편이고하니.. 아직 팔팔하다고. 이정도 가지고 주눅들 수 없지"

"하지만 간단하게라도.."

"크 됐다 됏어, 바깥바람이나 쐐고 오마. 이 좁아터진 공간에 계속 있다간 더 아파버릴꺼 같아."

이 청년 지한은 그나마 건강한 사람이었다. 얼마 있지도 않은 건장한 몇몇 청년이 그나마 이곳의 힘든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었기에 서민은 치료를 받으라고 계속 붙잡았지만 워낙 고집이 쌔서 결국 서민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터벅터벅 걸어나가는 지한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서민이었다. 밖에서 집의 나무 판자에 기대 하늘을 쳐다보던 류현도 그 얘기를 듣고 있었는지, 문 밖으로 나온 지한에게 말을 걸었다.

"뭐하시려고 나왔어요. 괜히 움직이시면 안되요"

"이 녀석아 그럼 허구한 날 집안에 쳐박혀있으리? 그렇게 가만히 있다간 온몸의 근육이 굳어 버릴거다."

지한은 따스하다 못해 뜨거운 햇살을 느끼며 기지개를 폈다. 하지만 곧 온몸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크..큭으윽...아악. 쓰..쓰라려.. 괘..괜히했나?"

"으이고 그런 바보짓을 왜 해요! 상처 벌어지면 어쩌려고."

"하아.... 하루종일 잠만 잤더니 찌뿌둥해. 아, 류현 이따가 뱀잡으러 가는 거 잊지 말고 있어. 난 덫에 걸린게 있나 보러 갔다 올 테니깐."

"예~예~ 잠깐! 저번처럼 상처 더 달고 오면 알아서 해요."

"흥, 그땐 운이 안 좋아서 자빠졌을 뿐이라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지한의 모습이 사라져갈 때 쯤 류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염없이 푸르른 하늘이었다.

'후우.. 좀 구름이라도 쳤으면 좋겟다. 이곳은 이리 어두운데 하늘만은 저리 밝고 푸르다니...'

류현의 눈에 보이는 저 하늘의 아름다움은 자꾸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했다. 하늘을 보며 푸념하길 몇 분 서민이 걸어나왔다.

"류현아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 쯤 한번 더 모아봐야 할 꺼 같아."

"응, 안 그래도 지한 형 하고 같이 가보려했어."

"미안하다.."

"누나도 참! 미안할게 어딨어. 얼굴 좀 피고 웃는 얼굴로 말해줘. 누나 요즘 웃는 얼굴을 못봤어."

실증내는 표정 하나 없이 웃으며 말하는 류현이었다.

"녀석... 그래 앞으론 웃는 모습 잔뜩 보여주마."

"알았어 그럼 짚이나 꽈고 있을께."

"그래."

언제 힘들었냐는 듯 빠르게 달려나가는 류현의 모습을 부며 서민은 작게나마 웃음을 지엇다. 서민은 다시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선 숙달된 솜씨로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갔다. 막상 치료를 시작하자 얼굴에서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우곤, 하나하나의 손짓에 정성을 들여 움직였다.

서민이 치료하던 할머니는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

"항상 고마워."

붕대를 감던 서민은 할머니의 대답에 미소지을 뿐이었다.

"이따 류현이 돌아오거든 우리집으로 보내, 내가 죽이라도 끓여놓고 있을테니깐."

"몸도 편찬으신데. 괜찮아요."

"아냐, 아냐 내가 해주고싶어서 그래."

안 그래도 서민도 몇 개월 사이에 무척 수척해져가는 류현의 모습이 안쓰러웠었다. 누나가 되서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그럼 저랑 같이 만들어요. 같이 만드는 것도 즐거울꺼에요."

"그러겠니?“

할머니는 서민의 손을 감싸 잡으며 말을 이었다.

“서민이가 류현이 걱정이 많겠구나."

"후훗, 괜찮아요. 듬직해져서 오히려 요샌 동생이 제 걱정을 하는 걸요."

곧 모든 처방이 끝났고, 서민은 두건을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건물 밖으로 나가선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혔다. 걱정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먹을 걱정이 덜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한창 여름인 지금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추위와 배고픔에 대부분이 죽어갈 것이다. 그것은 류현과 서민 자신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람이 제법 불어서 머리가 헝클어지자 머리를 다시 모아 넘기어 두건을 간단히 둘러매었다. 그녀는 곧 발걸음을 옴기기 시작했고 한 허름하고 작은 집에 도착했다.

이 집은 바로 류현과 서민이 지내는 곳이었다. 정면에 있는 출입문은 낡아서 떨어질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문을 지나쳐 들어간 실내엔 탁상과 가지런히 책들이 놓여있는 책장 그리고 류현과 자신이 쓰는 침구류가 간소히 놓여져 있엇다. 서민은 하나 남은 의자에 걸터앉고는 생각에 잠기었다.

....자신이 어렷을 적, 어머니가 처음 이 병에 걸렸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위해 무슨 방법이든 다 써보았다. 하지만 결국 치료법은 찾아내지 못했고,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뜰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자신의 소망은 하나. 아니 둘이었다. 하나는 중해의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생이 별 탈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었다. 그 중 첫 번째 소망을 위해 노력해온지 어언 13년. 그녀가 수집해오고 연구해온 자료는 어느덧 책장 하나를 채워갈 정도로 모아져 있엇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려받은 책이 상당 수 있었지만 혼자서 진행한 것치곤 상당한 양이었다. 종이가 부족한 탓에 필기를 덧대어 해서 서민밖에 못알아보는 점이 흠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어머니... 지켜봐주세요...."

서민은 탁상에 손을 모으고 작게 기도를 올린다. 어려서 부터 중해와 붙어서 살아온 삶. 그런 서민은 중해의 원인을 알고 있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최근이지만 분명 그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병의 원인은 바로 하늘의 달. 수지홍월이라 이름 붙여진 달이었다. 하늘에 떠있는 2개의 달 중 하나가 중해의 원인이라니. 누군가 듣는다면 웃으며 무시할 그런 이야기 였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이 병과 붙어 살아온 서민은 그것이 이유임에 틀림없음을 확증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홍월에 땅이 반응하고, 그리고 병이 퍼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녀였다. 이 정체불명의 기운은 땅에서 일어나 자연치유 되지 않으며, 좀벌레 처럼 서서히 몸을 갉아먹어 들어갔다. 다행히 그런 지리적 환경을 파악하고 나선 그 땅을 벗어나 병이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단순히 홍월이 뜬다고 땅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달만 보아선 알 수 없는 땅과의 무언가 교류가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 중 일부를 계산하고 예측하는 법을 알게 된 서민이었다. 그 기쁜 마음에 치료법에 대한 연구도 박차를 가했으나, 역시나 그 해결방법은 마찬가지였다.

"높은 무공을 지닌 사람의 기를 전해주어 몸속의 중해의 원인을 없애거나.... 그 기운의 반대되는 힘을 가지고있는 무언가...."

류현과 서민이 중해의 환자들과 같이 살아오면서도 병에 걸리지 않았던 건, 어렸을 적 아버지의 안배로 영약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날의 일로 아버지가 죽으며 남긴 업 또한 같이 짊어져야했다... 한때는 무공에 기대를 걸고 그 치료법을 연구했다. 다행히 무공 몇 개를 구할 수 있긴 했지만, 평범한 무공은 일반 사람이라면 평생을 해야 미미한 효과 뿐 이었고,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이름있는 무공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인 의미들로 쓰여져 있어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해석을 해낸다 해도 필시 의원의 지식만으로 도전하기엔 위험한 것임엔 틀림없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억지로 도전 해보았으나, 이미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사람들에게 무공의 효과를 기대하긴 무리였다. 매번, 매번 절망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찾는 바보라는 것을. 어지간한 방법으론 이 병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울음을 참지 못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면 류현 몰래 숲에 들어가 서럽게 울곤 했다. 이런 일에 몰두 하는 건 사실상 미친 짓이란 걸 잘 알고 있는 서민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종종 류현과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묻곤 한다. 하지만 이것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과거 아버지가 마을사람들에게 짓밟혀 죽으면서까지 자신들을 살렸던 건 이 병에 얽힌 업을 풀어주길 바래서 였다. 그건 이제 서민 본인에게도 똑같이 간절한 염원으로써 자리 잡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는 서민은, 이제 마지막 방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황당하기 그지없고 무모하기까지 한 유일한 방법. 저 깊은 숲에서 ‘운’을 찾는 것. 무림의 사람들에게 영약이나, 기연이라 불리우는 그런 걸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 정체불명의 기운을 연구하며 땅에 대해 쌓은 지식을 토대로 자연의 정순한 기운이 모이는 곳을 찾아왔다. 이건 단순히 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쌓아온 지식은 그것이 허무맹랑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그러한 곳을 어림짐작으로 나마 예측하기에 이르렀다. 무려 4개의 산봉우리를 돌아다니며 모든 지역을 기록하고 관찰해온 후에야 그 방향이나마 짐작한 것이었다. 사람에게 회손 당하지 않은 천연의 자연, 그 깊숙한 곳 이라면 책에서만 보아오던 그런 무언가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다들 그녀의 말을 듣고 난 후엔 정적이 찾아왔다. 말이 그렇지 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무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가 한말에 농이 없음을 알게 되자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몇몇 사람은 희망보다 유일하게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불안감이 우선 들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예기를 입밖에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자 다들 준비는 됬나?"

그로부터 몇 일이 지난 아침. 안개가 살짝 끼어있는 풍경에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지한의 옆엔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청년이 한명 서 있었다.

“난 다 됐는데...”

약간 수척해 보이는 외모의 청년이 대꾸했다. 조군웅이란 이름의 이 청년은 마을에 몇 안되는 젊은이 중 하나 로 그나마 지한이 비슷한 나이대로 터놓고 지내는 유일한 사내였다. 준비를 끝마친 지한은 서민과 류현을 돌아봤지만, 사람들 틈에 끼인 채로 발걸음을 때질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초는 응달에 보관하시는 거 잊지 마시구요, 물에 끓일 때는...”

서민은 자신이 하지 못할 일들에 대해 다시 일러주기 정신이 없었고, 동네 아이들의 형 노릇을 맡아 하던 류현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시달리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출발을 마중하기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나와 있었다. 서른명 안팍의 사람들의 표정에서 서로 입밖에 꺼내지 못하는 불안감이 아침공기와 함께 싸한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아이들만은 예외인지 류현의 곁에서 난리법석이었다. 류현은 자신에게 달겨드는 아이들을 달래보려 애썼지만 울며불며 달겨 들어서 어찌 달래야 할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부모들이 나서서 아이들을 야단치며 때어 놓고 나서야 겨우 떠날 만한 분위기가 되어 보였다.

“류현 형, 다녀 와서 꼭 공 만드는거 가르쳐 줘야해!”

콧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붙어있던 아이는 유일하게 자신들과 놀아줄 수 있는 류현이 떠난다고 하자 그게 걱정이었는지 훌쩍대고 있었다.

“그래, 그래. 다녀와서 꼭 가르쳐 줄게.”

지한은 마지막 확인을 끝마치고 마을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부디 다들 몸 조심하세요.“

지한이 앞으로 돌아섰다.

"자, 가자!"

"잠깐만요!"

몇일 전 죽을 차려주었던 할머니가 지팡이를 지며 사람의 인파속에서 걸어나왔다. 옆에선 할머니의 아들이 부축을 하고 있었다. 그 새 병새가 더 심해졌는지 얼굴이 무척 수척해져 있었고 그걸 본 서민이 깜짝 놀라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부축을 받고 걸어와선 품에 쥐고 있던 끈달린 주머니를 류현에게 내밀었다.

"류현아 이걸 가져가거라."

끈으로 묶은 천주머니였다.

"부적이란다. 내 아들내미도 산에 오를 땐 항상 차던 거란다. 널 도와줄게야."

류현이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그 옆에 있던 아들은 조바심을 내며 말을 이었다.

"자자, 이제 됬죠. 어서 들어가세요 어머니. 밤새 편찮으셨으면서 이렇게 억지 부리시면 안된다구요."

"예끼! 가는 것 정도는 봐둬야지. 네 녀석은 내 걱정만 하느냐?"

지팡이로 아들의 정강이를 후려치자 아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정강이를 제대로 맞고 말았다. 부축하고 있는 손은 어쩌지 못한 체 다리를 비비꼬는 모습에 마을 사람들 사이로 작게 웃음이 퍼졌고, 류현도 작게 웃으며 부적을 목에 걸곤 말했다.

"돌아와서 돌려 드릴께요."

"됐구나, 그건 이제 네꺼야. 돌아오면 죽 끓여줄테니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네!"

지한은 이대론 다들 발도 못때겠군 하고 푸념하며 먼저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가자!”

지한이 성큼성큼 걸어 나가자 그 뒤를 조군웅이 재빨리 쫓았다. 그걸 본 류현과 서민도 서둘러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은 안개 사이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흐려져 가는 그들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새삼 불안감이 솟아 올랐지만, 그 마음을 애써 돌리며 저마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성심껏 기원했다. 이태껏 자신들의 기원을 무시한 하늘이 이제와서 그 기원을 들어줄리 만무했음에도..


 



덧글

댓글 입력 영역